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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9 'Supermac' Malcolm Macdonald

'Supermac' Malcolm Ma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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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인 ‘수퍼맥’ 말콤 맥도날드('Supermac' Malcolm Ian Macdonald)는 자신의 고향 팀인 풀햄을 응원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유소년 팀들을 돌아다니며 실력을 키우던 맥도날드는 훗날 자신의 축구인생을 성공가도로 이끌어줄 해리 해슬람을 만납니다. 1967년 해슬람의 초대로 톤브릿지와 계약한 맥도날드는 해슬람이 2년뒤 풀햄으로 떠나자 해슬람를 따라 자신이 사랑하는 고향 팀인 풀햄으로 이적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적한 첫시즌, 풀햄은 강등되었고 왼쪽 풀백으로 뛰던 맥도날드는 경기에 많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1969년 7월, 풀햄은 £17,500의 이적금으로 맥도날드를 루턴에 이적시킵니다. 루턴에서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한 맥도날드는 풀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화려한 모습, 과도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자신감 등을 기반으로 점점 성장했습니다. 맥도날드는 수비수들을 빠른 속도로 따돌리고 강력한 슈팅을 날리며 수많은 멋진 골들을 넣었고 루턴은 맥도날드의 대활약을 기반으로 3부리그로 승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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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리그에서 27골을 넣었던 맥도날드는 2부리그에서 30골을 넣으며 더욱 활약하였고 당시 뉴캐슬의 감독이었던 조 하비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합니다. 조 하비 감독은 당시 영국 역사상 2번째 최고 이적금이었던 £180,000을 쓰며 1971년, 말콤 맥도날드를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데려왔습니다.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쇼비지니스가 무엇인지 아는 선수였던 맥도날드는 자신의 기자회견에 기사가 운전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맥도날드를 '1부리그 수준이 아니다', '너무 왼쪽에 치우친 플레이를 보인다'라며 저평가 했습니다만 맥도날드는 곧바로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자신의 데뷔 경기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맥도날드는 뉴캐슬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데뷔하자마자 뉴캐슬 서포터들의 지지를 얻어낸 맥도날드는 70년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였습니다. 비싼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을 자주 방문하여 샴페인을 마시며 커다란 시가를 피우곤 했던 맥도날드는 자신만의 부티크를 소유했고 늘 깔끔한 차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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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의 골에 이은 골들은 서포터들을 흥분시켰고 맥도날드는 5년 연속 클럽의 최다 득점자가 되며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뉴캐슬에서 뛰면서 웨일즈를 상대로 잉글랜드 국가대표 데뷔를 치른 맥도날드는 1975년 4월 16일, 대기록을 세웁니다. 잉글랜드가 사이프러스를 상대로 5:0 대승하였을 때 5골을 전부 넣으며 잉글랜드 한경기 일인 최다 득점기록과 타이를 이룹니다. 이 기록은 현재에도 유효하며 당시 신문의 1면을 ‘수퍼맥 5 : 사이프러스 0’이라고 장식했습니다. 맥도날드는 A매치에 총 14번 출장하여 6골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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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과 1976년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FA컵 결승전으로 이끌었던 맥도날드였지만 뉴캐슬에서 그의 생활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고든 리가 임명되기 전까지 난 뉴캐슬을 사랑했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맥도날드는 당시 감독인 고든 리와 갈등을 맺었습니다. 결국 1976/1977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고든 리 감독은 ‘수퍼맥’을 아스날으로 이적시켰습니다. 이 이적은 약간 특이했었는데요. 맥도날드의 이적금은 £333,333.33이었으며 ‘수퍼맥’은 뉴캐슬을 떠날 때 그가 롤스로이스를 타고 뉴캐슬에 도착했던 것처럼 럭셔리하게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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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에게 맥도날드를 판 고든 리의 결정은 뉴캐슬 서포터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아직까지도 논란거리로 남아있습니다. 고든의 통계는 그가 2경기에 1골씩 기록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클럽이 이러한 선수를 다시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이버리에서도 맥도날드는 2시즌 연속 팀의 최다득점자가 되며 활약했으나 1978/1979시즌 로테르담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무릎부상을 입은 후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스웨덴의 유르고르덴 IF에서 2달 정도 머무른 뒤 맥도날드는 29세의 나이로 이른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선수생활동안 트로피를 들어본적이 없으며 단지 FA컵 결승전의 패배팀들(뉴캐슬, 아스날)에 속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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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맥도날드는 1980년부터 1984년까지 4시즌 동안 고향 팀인 풀햄의 감독으로 활동한 후 1987년부터 1988년까지 허덜스필드의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감독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사업의 실패로 파산한 후 2번째 부인과 이혼하는 불행이 겹쳤습니다.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던 그는 다행히도 1997년에 술을 끊는데 성공했고 영국 북동부의 센츄리 FM에서 버니 슬레이븐 (Bernie Slaven), 미키 호스윌(Micky Horswill)과 함께 ‘3명의 전설’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또한, 前 축구스타들을 초대하는 ‘말콤 맥도날드와 함께’라는 30분 길이의 라디오토크쇼를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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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맥’ 말콤 맥도날드는 뉴캐슬의 또다른 레전드인 조 하비가 “서포터들에게 재키 밀번의 재림이 될 수 있는 선수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뉴캐슬의 전설들을 상징하는 9번을 달고 뛰었고 그 9번에 걸맞는 선수였던 맥도날드는 놀라운 속도와 강력한 슈팅을 소유하고 있었고 키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중볼에도 강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맥도날드가 얼마나 빨랐냐 하면 TV쇼에서 맥도날드는 100미터를 무거운 스파이크가 달린 신발을 신은 채 10.4초에 주파했고 그 기록은 당시 영국 100미터 선수중 3번째로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원한다면 몬트리얼 올림픽의 100미터 릴레이팀에 출전할 수도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맥도날드는 그의 자서전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못 넣을까봐 걱정하지 않는’ (Never Afraid To Miss’) 선수였습니다. 볼튼의 수석코치였던 조지 멀홀이 했던 말이 ‘수퍼맥’ 말콤 맥도날드를 종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수퍼맥’이 아니에요. ‘수퍼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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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맥도날드 (Malcolm Ian Macdonald)

출생
: 1950. 01. 07. 풀햄

포지션
: 포워드

클럽 경력
:
1968–1969 풀햄 13 (5)
1969–1971 루턴 88 (49)
1971-1976 뉴캐슬 187 (95)
1976–1979 아스날 84 (42)
1979 유르고르덴IF 9 (2)

국가대표 경력
:
1972-1976 잉글랜드 14 (6)

감독 경력
:
1980-1984 풀햄
1987-1988 허덜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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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타군
Football 2008.02.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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