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재개하려다 보니, 근황이 그때와 너무 바뀌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는 수준에 다다렀다. 일단 8년전의 나는 서울에서 한국 대기업의 재무부서에서 일한지 3년차를 찍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 후,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렇게 그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뭔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선택한 것이 MBA였다. 결국 미국 MBA로 진학하여 최근 미국의 암흑기 최고조라고도 볼 수 있는 코로나 및 Black lives matter 시위 등을 재학 중 경험했다. 엔간한 사람들보다 더 특이했을 MBA 생활을 뒤로 한 채, 졸업 후 미국 현지 취업에 성공하여 시애틀에 있는 A사의 Finance 부서로 입사하게 되어 시애틀로 이사하여 생활한지 이제 3년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이 문단 시작할 때만 해도 생각했는데 어느새 한문단 내로 8년의 내용이 들어가는거 보면, 인생사라는건 의외로 대단하지 않을 것일지도 모른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손 꼽는 2개의 테크회사가 본사를 두고 있는 도시이다. 또한, 코스트코, 스타벅스, T모바일 등도 본사를 두고 있고, 보잉은 과거에 시애틀에 본사를 두었던만큼 아직 시애틀과 워싱턴주에 큰 비행기 생산시설들을 두고 있다. 미국 도시 중에서도 다수의 대기업들의 본사를 두고 있는만큼 높은 외국인 비율을 가지고 있으며 (라고 쓰지만 인도인 대다수) 중동부 도시들과는 서뭇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 같은 7~8월의 시애틀은 날씨는 온도가 25도 이상을 잘 가지 않아 덥지 않고 쾌적하면서도 맑고 초록빛깔로 빛나는 '에메랄드 시티'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치만 그외의 달들에는 계속 비만 오고 흐리고 우중충하고 우울 그 자체.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정직원 전환 인턴들을 여름에 시애틀에서 일하게 하는데, 그 7~8월의 이쁜 날씨에 속아 시애틀에 눌러 앉았다가 겨울에 한달 넘게 햇빛 한번 없이 비만 오는 모습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수두룩하다.
느닷없이 이 사람이 갑자기 시애틀에 대해 왜 늘어놓느냐고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조만간 시애틀을 뜨게 될 예정이라서 그렇다. 졸업 후 유효한 미국 취업비자가 곧 만기가 되어서 한번 미국 밖 지사로 갔다가 돌아와야 하기도 해야해서 (가서 굳이 안 돌아와도 되지만), 다니는 회사의 장점인 엔간한 나라에 다 지사가 있다는 점을 집중하여 여기저기 팀을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일본에 적절한 팀 자리를 구해서 그 곳으로 조만간 옮기게 될 것 같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이리 시애틀을 뒤로 할 때가 되니 블로그에 이것저것 늘어 놓게 되는 것이다.
시애틀에서 3년동안 혼자 살며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커리어 상 얻은 것도 많았지만, 그러한 것을 뒤로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배제하면 솔직히 도시 자체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큰 아쉬움은 없다. 요즘 시애틀은 2023년 미국 통계에 따르면 뉴욕, LA를 다음으로 세번째로 홈리스가 가장 많은 오피셜 도시가 되었다. 뉴욕/LA가 미국에서 인구 1, 2위의 도시인 것에 비해 시애틀은 15위라는 것을 생각하면, 홈리스 순위 3위라는 것은 진짜 어메이징한 통계가 아닐까.. 사는 아파트에서 10분 걸어가면 다운타운이 나오는데, 다운타운에 홈리스들이 길거리에 널부러져 펜타닐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는건 진짜 일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Survival skill들이 많이 늘게 되는데, 길거리를 걷다보면 '아, 이 골목은 가면 안되겠구나.', '이 골목은 이 쪽길은 괜찮은데 건너편으로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겠구나' 싶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시애틀 다운타운에서는 그 레이더가 상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두서 없이 썼지만, 결국 이 글은 시애틀을 1~2달이면 떠날 내가 그 종착점이 가까워지자 시애틀에 대한 생각을 써보고 싶었던 것의 부산물이다. 30대 초중반을 보낸 시애틀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고, 시애틀에 온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는 것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시애틀이 더 험한 꼴로 변하기 전에 적당한 타이밍에 떠나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사실 살면서 무언가 선택을 내렸을 때, '이 선택이 맞는 것일까. 다시 번복 못하면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라도 하기 쉽상인데, 이리 깔끔하게 생각이 정리되는게 신기해서, 이 감정을 블로그에 남겨본다. 시애틀, 정도 그동안 많이 들었지만 이리 정 떼기도 쉬웠구나. 깔끔해서 좋네.
일상 생각을 써보고 싶어서 쓰다보니 길게 적었네요. 다른 분들이 오가는 블로그 환경 상 평소에는 존칭어를 쓰고자 하는데, 두서없이 생각을 늘어놓을 때는 편하게 쓰는게 글이 잘 써지는 듯하여 한번 바꿔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