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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No. 7 : Rob Lee

Football 2008. 2. 1. 15:59

1966년 2월 1일 웨스트햄, 런던에서 태어난 롭 리(Robert Martin Lee)는 뉴캐슬의 중원를 이끌었던 선수였습니다. 키건 감독이 92/93 시즌에 £700,000의 금액으로 찰튼에 있던 리를 영입한 이후, 리는 10년 가깝게 뉴캐슬의 키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이며 뉴캐슬의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달글리쉬 감독 이후 임명된 굴리트 감독은 리를 계획에서 제외시킨 후 그에게 등번호조차 부여하지 않았고 리의 뉴캐슬 커리어가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후 롭슨 경이 임명된 후 다시 팀의 일원으로 돌아온 리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하여 뉴캐슬을 위해 활약했습니다. 롭 리는 뉴캐슬의 주장이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선수이었으며 누구도 그가 뉴캐슬의 영웅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찰튼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키운 리는 84/85 시즌, 주전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합니다. 순식간에 찰튼의 스타가 된 리는 미드필더와 포워드를 둘다 소화하며 85/86 시즌이 끝날 무렵 찰튼을 디비전 1로 승격시킵니다. 89/90 시즌이 끝날 무렵 찰튼은 다시 디비전 2로 강등되었지만 그때까지 리는 4년 동안 찰튼을 이끌며 활약했습니다. 롭 리는 강등된 찰튼에 2년 동안 머물렀으나 더밸리 스타디움으로 돌아갈 자금이 부족했던 찰튼은 92/93 시즌에 그를 이적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2위였던 찰튼은 롭리를 그들보다 순위가 하나 높았던 팀에게 £700,000을 받고 리를 이적시킵니다. 바로 뉴캐슬 유나이티드였지요. 뉴캐슬 외에도 미들스브로가 롭 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전해진 바에 따르면, 롭 리는 당시 뉴캐슬의 감독이었던 키건 감독의 '런던은 미들스브로보다 뉴캐슬에서 더 가깝다.'라는 설득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가깝다'라는 의미는 실제거리가 아니라 소요시간이었는데요. 당시 런던-미들스브로 행 비행기보다 런던-뉴캐슬 행 비행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첫 시즌에 롭 리는 뉴캐슬이 93/94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는데 일조합니다. 그 이후 몇년 동안 리는 키건이 이끄는 팀의 핵심이 되었으며 많은 프리미어 리그의 트로피에 도전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팀은 96/97 시즌에는 준우승을 하며 '엔터테이너스'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롭 리의 경기력은 상당했으며 키건이 그를 '영국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1997년, 키건 감독의 시대가 끝나고 달글리쉬 감독이 들어서자 롭 리는 뉴캐슬의 주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이끌어 내지 못한 달글리쉬 감독은 98/99 시즌이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해임되었습니다. 새 감독 루드 굴리트가 임명된 후 팀이 부진하자 주장이었던 롭 리는 굴리트를 비난했고 이에 대한 응징으로 굴리트는 리의 주장완장을 뺏은 후 그에게 등번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굴리트는 리를 유소년팀에 강등시켜버려 누가봐도 롭리는 굴리트의 계획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였죠. 하지만 다음 시즌이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굴리트 감독은 사임했고 바비 롭슨 경이 들어서자 리는 다시 스쿼드에서 그의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굴리트가 뺏은 리의 기존 등번호인 7번은 키에론 다이어에게 주어졌었으나 다이어의 강요와 고집에 의해 리는 다시 그의 7번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롭슨 경 시대에서의 리는 90년대 중반에 보여주던 기존의 공격적인 모습을 버리고 상대의 플레이를 끊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01/02 시즌에 리는 뉴캐슬과의 계약을 연장하고 싶었으나 뉴캐슬은 02년 1월까지 재계약 협상을 미루길 원했고 리는 재계약의 방향에 대해 불쾌해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이적명단에 오르길 원했고 선수들과 팬들은 경악하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롭슨 경은 매우 유감스러워했으나 리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였고 2월 02년 리는 더비 카운티에 £250,000의 금액으로 이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뉴캐슬에서의 10년동안 그가 보여준 모습은 리가 뉴캐슬에서 레전드가 되었음을 뜻했습니다. 롭 리는 더비에서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결국 더비는 강등되었습니다. 그 후 03년, 리는 자신이 어릴때 지지하던 웨스트햄으로 이적하였으나 03/04 시즌동안 몇 경기 출전하지 못하였고 결국 자유계약으로 풀렸습니다. 리는 올드햄과 와이콤비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으며 와이콤비에 입단한 후 리그 2에서 2시즌을 보낸 후 2006년 6월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 06년 10월, 롭리는 본머스의 감독을 노리고 인터뷰했으나 케빈 본드에게 자리를 빼았겼고 07년 7월에는 그의 前 팀 동료였던 워렌 바튼과 함께 차량 도난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그는 또한 07년 9월에 있었던 자선 프리미어 올스타 경기에서 뉴캐슬을 대표하여 출장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롭 리가 뛰던 시절을 본적이 없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툰아미들이 그가 뉴캐슬의 레전드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뉴캐슬의 레전드인 앨런 시어러는 그에 대해 '스콜스와 개스코인 때문에 롭리는 대표팀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 했지만 그는 훌륭한 미드필더였다. 그는 오른쪽 측면에서 뛴 적도 있고 그 다음에는 좀 더 공격적인 역할을 맡아 한 시즌에 20골을 득점한 적도 있으며, 나중에는 홀딩 역할까지 소화했다. 그는 미드필더 어디에서라도 뛸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현재 뉴캐슬의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미드필더진을 생각해 볼 때 한없이 그리운 롭 리. 그의 플레이를 뉴캐슬의 후배들이 이어 나갈 수 있길 소망하며 글을 마쳐봅니다.




 
롭 리 (Robert Martin Lee)

출생
: 1966. 02. 01. 런던

포지션
: 미드필더

클럽 경력
:
1983–1992 찰튼 298 (59)
1992–2002 뉴캐슬 303 (44)
2002–2003 더비 48 (2)
2003–2004 웨스트햄 16 (0)
2004 올드햄 0 (0)
2005–2006 와이콤비 38 (0)

국가대표 경력
:
1994 잉글랜드 B 1 (0)
1994–1998 잉글랜드 21 (2)

뉴캐슬 주장
: 1997~1999
[前주장 : 피터 비어즐리(Peter Beardsley) / 後 주장 : 앨런 시어러(Alan Shearer)]
Posted by 제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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