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슬 총 순위

Football 2008. 2. 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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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동부의 열광적인 축구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1892년 창단되었습니다. 뉴캐슬의 첫 경기는 189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미들스브로와의 친선경기였습니다.. 지금의 툰아미를 생각하면 상상도 하기 힘들겠지만 초반 서포터들의 지지가 별로 없어 클럽 간부가 '뉴캐슬 사람들은 프로축구를 즐길 자격이 없다'라고 신문에 낼 정도였습니다. 그 말에 뉴캐슬 사람들이 자극받았는지는 몰라도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서포터들은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그리고 1895년 프랭크 와트 (Frank G. Watt)가 클럽 비서로 임명되었고 클럽 비서로서 그는 팀을 이끌었습니다. 와트는 팀 선정에 영향을 줄 수 없었던지라 정식 감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감독이라는 직업이 희미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와트는 비공식적인 클럽의 초대 감독이었습니다. 참고로 창단해인 1892년부터 와트가 임명된 1895년 사이에는 감독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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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보면 와트는 뉴캐슬의 기초를 다지는 중대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인이었던 와트는 실력있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수들을 영입하여 팀의 전력을 향상시켰고 2부리그의 무난한 팀이었던 뉴캐슬을 1부리그의 강호로 성장시키며 현재 뉴캐슬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와트의 지휘 아래 뉴캐슬은 1부 리그 4회 우승(1905, 1907, 1909, 1927)FA컵 2회 우승 (1910, 1924)을 기록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와트보다 감독으로서 FA컵 결승전에 출장한 감독은 퍼거슨 경 밖에 없을 정도로 와트 아래 팀은 성공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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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팀의 플레잉 감독으로서 임명된 앤디 커닝엄 (Andy Cunningham)이 뉴캐슬의 첫 공식 감독이 되며 와트는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계속 뉴캐슬의 클럽비서로서 활동하였습니다. 왓포드와의 FA컵 경기의 하루 전날, 클럽 비서로서 경기에 대한 준비를 마친 후 와트는 1932년 77세의 나이로 뉴캐슬에 있었던 그의 집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팔자수염이 인상적이며 밀짚모자를 즐겨쓰던 그는 뉴캐슬에서 사랑받는 존재였고 뉴캐슬은 왓포드를 5:0으로 꺾으며 57,879의 관중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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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은 여태 총 1부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6회를 기록했습니다. 와트의 지휘 아래 그 중의 4회 우승과 FA컵 우승을 2회 한 것을 보면 팀의 역사에서 그가 얼마나 기여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팀의 초대 감독이었던 그가 이루어낸 것이 팀 전체의 2/3나 차지한다는 것은 대단하면서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만큼 그 이후 팀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의미기 때문이죠. 뉴캐슬을 위해 죽는 날까지 뛰며 클럽에 일생을 바친 프랭크 와트를 떠올리며 분발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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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No. 7 : Rob Lee

Football 2008. 2. 1. 15:59

1966년 2월 1일 웨스트햄, 런던에서 태어난 롭 리(Robert Martin Lee)는 뉴캐슬의 중원를 이끌었던 선수였습니다. 키건 감독이 92/93 시즌에 £700,000의 금액으로 찰튼에 있던 리를 영입한 이후, 리는 10년 가깝게 뉴캐슬의 키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이며 뉴캐슬의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달글리쉬 감독 이후 임명된 굴리트 감독은 리를 계획에서 제외시킨 후 그에게 등번호조차 부여하지 않았고 리의 뉴캐슬 커리어가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후 롭슨 경이 임명된 후 다시 팀의 일원으로 돌아온 리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하여 뉴캐슬을 위해 활약했습니다. 롭 리는 뉴캐슬의 주장이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선수이었으며 누구도 그가 뉴캐슬의 영웅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찰튼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키운 리는 84/85 시즌, 주전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합니다. 순식간에 찰튼의 스타가 된 리는 미드필더와 포워드를 둘다 소화하며 85/86 시즌이 끝날 무렵 찰튼을 디비전 1로 승격시킵니다. 89/90 시즌이 끝날 무렵 찰튼은 다시 디비전 2로 강등되었지만 그때까지 리는 4년 동안 찰튼을 이끌며 활약했습니다. 롭 리는 강등된 찰튼에 2년 동안 머물렀으나 더밸리 스타디움으로 돌아갈 자금이 부족했던 찰튼은 92/93 시즌에 그를 이적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2위였던 찰튼은 롭리를 그들보다 순위가 하나 높았던 팀에게 £700,000을 받고 리를 이적시킵니다. 바로 뉴캐슬 유나이티드였지요. 뉴캐슬 외에도 미들스브로가 롭 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전해진 바에 따르면, 롭 리는 당시 뉴캐슬의 감독이었던 키건 감독의 '런던은 미들스브로보다 뉴캐슬에서 더 가깝다.'라는 설득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가깝다'라는 의미는 실제거리가 아니라 소요시간이었는데요. 당시 런던-미들스브로 행 비행기보다 런던-뉴캐슬 행 비행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첫 시즌에 롭 리는 뉴캐슬이 93/94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는데 일조합니다. 그 이후 몇년 동안 리는 키건이 이끄는 팀의 핵심이 되었으며 많은 프리미어 리그의 트로피에 도전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팀은 96/97 시즌에는 준우승을 하며 '엔터테이너스'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롭 리의 경기력은 상당했으며 키건이 그를 '영국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1997년, 키건 감독의 시대가 끝나고 달글리쉬 감독이 들어서자 롭 리는 뉴캐슬의 주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이끌어 내지 못한 달글리쉬 감독은 98/99 시즌이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해임되었습니다. 새 감독 루드 굴리트가 임명된 후 팀이 부진하자 주장이었던 롭 리는 굴리트를 비난했고 이에 대한 응징으로 굴리트는 리의 주장완장을 뺏은 후 그에게 등번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굴리트는 리를 유소년팀에 강등시켜버려 누가봐도 롭리는 굴리트의 계획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였죠. 하지만 다음 시즌이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굴리트 감독은 사임했고 바비 롭슨 경이 들어서자 리는 다시 스쿼드에서 그의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굴리트가 뺏은 리의 기존 등번호인 7번은 키에론 다이어에게 주어졌었으나 다이어의 강요와 고집에 의해 리는 다시 그의 7번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롭슨 경 시대에서의 리는 90년대 중반에 보여주던 기존의 공격적인 모습을 버리고 상대의 플레이를 끊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01/02 시즌에 리는 뉴캐슬과의 계약을 연장하고 싶었으나 뉴캐슬은 02년 1월까지 재계약 협상을 미루길 원했고 리는 재계약의 방향에 대해 불쾌해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이적명단에 오르길 원했고 선수들과 팬들은 경악하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롭슨 경은 매우 유감스러워했으나 리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였고 2월 02년 리는 더비 카운티에 £250,000의 금액으로 이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뉴캐슬에서의 10년동안 그가 보여준 모습은 리가 뉴캐슬에서 레전드가 되었음을 뜻했습니다. 롭 리는 더비에서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결국 더비는 강등되었습니다. 그 후 03년, 리는 자신이 어릴때 지지하던 웨스트햄으로 이적하였으나 03/04 시즌동안 몇 경기 출전하지 못하였고 결국 자유계약으로 풀렸습니다. 리는 올드햄과 와이콤비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으며 와이콤비에 입단한 후 리그 2에서 2시즌을 보낸 후 2006년 6월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 06년 10월, 롭리는 본머스의 감독을 노리고 인터뷰했으나 케빈 본드에게 자리를 빼았겼고 07년 7월에는 그의 前 팀 동료였던 워렌 바튼과 함께 차량 도난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그는 또한 07년 9월에 있었던 자선 프리미어 올스타 경기에서 뉴캐슬을 대표하여 출장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롭 리가 뛰던 시절을 본적이 없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툰아미들이 그가 뉴캐슬의 레전드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뉴캐슬의 레전드인 앨런 시어러는 그에 대해 '스콜스와 개스코인 때문에 롭리는 대표팀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 했지만 그는 훌륭한 미드필더였다. 그는 오른쪽 측면에서 뛴 적도 있고 그 다음에는 좀 더 공격적인 역할을 맡아 한 시즌에 20골을 득점한 적도 있으며, 나중에는 홀딩 역할까지 소화했다. 그는 미드필더 어디에서라도 뛸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현재 뉴캐슬의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미드필더진을 생각해 볼 때 한없이 그리운 롭 리. 그의 플레이를 뉴캐슬의 후배들이 이어 나갈 수 있길 소망하며 글을 마쳐봅니다.




 
롭 리 (Robert Martin Lee)

출생
: 1966. 02. 01. 런던

포지션
: 미드필더

클럽 경력
:
1983–1992 찰튼 298 (59)
1992–2002 뉴캐슬 303 (44)
2002–2003 더비 48 (2)
2003–2004 웨스트햄 16 (0)
2004 올드햄 0 (0)
2005–2006 와이콤비 38 (0)

국가대표 경력
:
1994 잉글랜드 B 1 (0)
1994–1998 잉글랜드 21 (2)

뉴캐슬 주장
: 1997~1999
[前주장 : 피터 비어즐리(Peter Beardsley) / 後 주장 : 앨런 시어러(Alan Shea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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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힘든 직업 : 키건 이후 뉴캐슬에 오고 간 감독들 (from Mirror)





키건 1993 ~ 1997

3부리그로 향하던 뉴캐슬에 취임. 감동과 기사도의 축구로 클럽을 프리미어리그 우승후보로 바꾸어 놓음.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흥미진진한 축구를 가져옴.

승률 55%

경기: 143
승: 78
패: 35
무: 30
골: 253
실점: 147





달글리쉬 1997 ~ 1998

리버풀에서 선수시절 그랬듯이 키건을 대체. 하지만 성공적이지 못함. 첫 시즌에 팀을 13위로 이끔. 2번째 시즌 첫 2경기 만에 경질.

승률 34%

경기: 56
승: 19
패: 18
무: 19
골: 69
실점: 61





굴리트 1998 ~ 1999

'섹시축구'의 창립자. 첫 시즌에 뉴캐슬을 FA컵 결승전으로 이끔. 하지만 앨런 시어러와 분쟁을 일으킨 후 그를 벤치에 앉히자 단 한 사람의 승자가 나옴. 그리고 그 사람은 네덜란드인이 아니었음.

승률 27%

경기: 41
승: 11
패: 18
무: 12
골: 54
실점: 66





롭슨 1999 ~ 2004

취임 후 첫 홈경기에서 셰필드 웬즈데이를 8-0으로 꺾음. 3위, 4위로 시즌을 마친 성공적인 시즌들도 있었음. 하지만 시즌을 나쁘게 시작한 후 경질됨.

승률 44%

경기:188
승: 83
패: 54
무: 51
골: 294
실점: 235





수네즈 2004 ~ 2006

£50m을 썼으나 여러 선수들과 분쟁을 일으켰으며 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함. 오웬을 레알에서 데려왔으나 경질시 뉴캐슬은 15위를 달리고 있었음.

승률 29%

경기: 56
승: 16
패: 23
무: 17
골: 58
실점: 76





로더 2006 ~ 2007

인터토토컵을 이기면서 1969년 이후 클럽의 첫 트로피를 얻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음. 하지만 10경기 중 1경기 밖에 이기지 못하며 뉴캐슬을 떠남.

승률 40%

경기: 52
승: 21
패: 20
무: 11
골: 64
실점: 60





앨러다이스 2007~2008

앨러다이스가 취임한지 얼마 안되어 새 구단주가 나타남. 실용적인 팀을 만드는 그의 명성에 맞게 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 하지만 취임 후 단지 239일 후 경질.

승률 33%

경기: 21
승: 7
패: 9
무: 5
골: 27
실점: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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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샘과 함께 폭소하는 애쉴리. 둘 사이의 관계는 문제없음.]

잉글랜드 북동의 열정적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훗날 07/08시즌을 클럽의 터닝포인트로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툰아미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프레디 셰퍼드 前 구단주를 드디어 물리치고(?) 은둔자 마이크 애쉴리를 맞이했으며 기존 '수네즈, 로더'와는 느낌부터 다른 '빅샘' 샘 앨러다이스 감독 체제 하에 대폭적인 리빌딩을 시작하여 팀혁명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물론 셰퍼드 前 구단주가 빅샘 감독을 임명한 후 얼마 안되어 사임하고 애쉴리가 나타나 빅샘 감독의 입지가 다소 불안한 느낌은 있지만 둘은 관중석에서 서로 웃으며 같이 경기를 관전하는 등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애쉴리는 크리스 모트를 구단주로 임명하여 실질적인 운영은 모트 구단주에게 맡기고 있으며 자신은 뉴캐슬의 소유주로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 내내 뉴캐슬 레플리카를 입은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전하여 팬들에게 다가왔으며 특히 對 선더랜드 원정경기에서는 일반 관중석에서 팬들과 함께 응원하여 대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처음 애쉴리 인수설이 일어날 때 기사마다 사진은 이것뿐. 아마 이 사진 말고는 사진이 없었던게 아닐런지.]

뉴캐슬의 소유주로서 유명해진 마이크 애쉴리지만 뉴캐슬을 인수하기 전에는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애쉴리가 뉴캐슬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영국의 신문인 '가디언'은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고 실패했습니다. '가디언'은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비밀에 휩싸인 백만장자는 허트포드샤이어 가장자리의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사는 걸로 추정된다. 그 건물은 나무들로 숨겨져 있으며 집에서부터 반마일에 위치한 입구의 굳게 닫힌 문에는 CCTV 카메라들이 설치되어 감시하고 있다. 애쉴리의 이웃들은 그를 본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근처 술집을 찾아갔으나 누구도 애쉴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몇달전, 지역 신문사에서 애쉴리에 대해 좀 더 알아내려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결국 자신들의 신문에 직접 애쉴리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광고를 실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처럼 애쉴리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이혼시 £50m 상당의 합의금을 지불한 것이 영국 법정 역사상 가장 큰 이혼합의 중 하나였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습니다.

 
[애쉴리의 Sports Direct. 여기에도 돌베르님이 찾는 로베르 마킹은 없었음.]

80년대에 학교를 떠난 애쉴리는 'Sport&Ski' 체인점들을 런던 내외에 열었습니다. 90년대 후반 'Sports Soccer'로 이름을 바꿨으며 영국 전역에 걸쳐 100개 이상의 체인점들을 열었습니다. 자영업자인 애쉴리는 영국기업등록소에 등록되지 않아 그에 대한 정보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애쉴리가 창업한 'Sports Direct International Plc'는 400개가 넘는 영국 체인점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Sports World', 'Lillywhites', 'Gilesports', 'the Original Shoe Company' 등의 체인점들도 이에 속합니다. 2006년에는 JJB Sports를 뛰어넘어 영국의 최대 스포츠물품 소매기업이 되었습니다. 애쉴리는 브랜드들을 매수하며 자산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가 소유한 브랜드 중에는 Donnay, Dunlop Slazenger, Karrimor, Kangol, Lonsdale 등이 있습니다. 애쉴리는 인수를 고려하여 £9m 상당의 Umbro 주식을 매수하였고 Umbro와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애쉴리는 Blacks Leisure의 29.% 주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JD Sports의 19%를 소유하고 있고 JJB Sports의 주식도 소유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애쉴리의 기업라이벌이자 위건의 스폰서인 JJB Sports. 위건에게 진다면 선수들 각오해야 할지도..]

2000년, 애쉴리는 공정거래청에게 스포츠소매기업들이 레플리카들 가격을 단합하기 위해 모인 증거를 제공하여 그의 사업경쟁자들 상대로 밀고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애쉴리는 Allsports의 회장인 David Hughes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JJB Sports의 창립자인 Dave Whelan은 애쉴리에게 "'영국 북부에 (경영자들의) 클럽이 있는데 자네는 들어올 수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셰퍼드는 구단 재정을 말아먹고 도망친거였나..]

2007년 5월 23일 존 홀 경의 41.6% 주식을 매수하며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의 인수를 시작한 애쉴리는 2007년 7월 7일 셰퍼드 前 구단주가 그의 28% 주식을 애쉴리에게 매도하기로 합의하며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총 £134m을 사용하여 주식의 100%을 매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애쉴리는 자신의 개인자산을 통해 뉴캐슬의 빚을 절반이나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후 크리스 모트 구단주에 의해 알려진 바로 의하면 만약 애쉴리가 빚을 갚아주지 않았다면 안될 정도로 뉴캐슬은 카드로 만든 집처럼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對 선더랜드 원정 더비. 관중석에서 팬들과 함께 응원하는 애쉴리.]

또한, 애쉴리는 왜 자신이 뉴캐슬 경기때마다 스미스의 17번 유니폼을 입는지 밝혔습니다. 그는 새로 영입된 뉴캐슬 선수 앨런 스미스가 팀을 위해 열심히 뛰려는 놀라운 열정과 의지를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애쉴리가 매경기마다 뉴캐슬유니폼을 입고 나타난다는 사실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선더랜드와의 경기때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선더랜드 측에서는 애쉴리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VIP석에서 뉴캐슬 유니폼을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경기 바로 전날, 애쉴리가 뉴캐슬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뉴캐슬 팬들과 함께 어웨이 관중석에서 관전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고 하프타임동안 애쉴리는 어웨이석의 모든 뉴캐슬 팬들에게 맥주를 돌리려고 하였으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직원들에게 제지 당하였습니다.
 
애쉴리가 뉴캐슬을 인수하였을 때 팬들은 기대반 걱정반에 휩싸였습니다. 길고 암울했던 셰퍼드 前 구단주 시대가 끝나자 모두 기뻐했지만 새로 나타난 마이크 애쉴리는 말 그대로 듣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그가 유능한 경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클럽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재산만 불리려는 목적으로 구단을 인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쉴리는 경기마다 뉴캐슬의 흑백을 입고 경기를 관전하며 매 골마다 기뻐하며 구단의 소유주보다는 하나의 팬으로써 툰아미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나긴 은둔생활을 끝내고 뉴캐슬 소유주로서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마이크 애쉴리, 그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정보들이 부족하지만 관중석에서 보여주는 그의 뉴캐슬 사랑은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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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을 영입한 앨러다이스 감독

뉴캐슬 구단주 크리스 모트는 1월에 앨러다이스 감독이 이적자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캐슬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으로 인해 새해에 4명의 선수를 잃을 예정이며 앨러다이스 감독은 수비 자원이 줄어들 것이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9명의 선수를 영입한 이후 뉴캐슬 이사회는 더이상의 지출을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트 구단주는 이러한 상황을 감독에게 확실하게 전달했으며 어느 선수라도 영입된다면 그 선수는 구단의 미래를 밝게 할 어린 선수일 것이라 하였습니다. 모트 구단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9명의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 특히 수비 부분은 선수들의 팀워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 수비수 2명을 영입한다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만약 1월에 새로운 영입을 한다면 그 대상은 뉴캐슬에 오랜 기간 동안 남을 선수들이지 당장 1군 주전을 뛸 선수는 아닙니다. 우리는 최고의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1군 스쿼드를 만들어 가려고 하지만 그 동시에 유소년 선수들의 수준을 높여 선수들을 영입하는데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유소년 부분은 역사적으로 뉴캐슬이 큰 문제를 가진 부분은 아니었지만 아스날을 보면 어린 유망주들을 영입하여 개발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스카이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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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사진에서 바튼이 공을 몰고 가는데 에투후가 가로 막습니다. 두번째 사진에서는 에투후가 공을 걷어냈는지 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바튼은 달려오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에투후에게 달려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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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튼이 자신을 보호하려는지 팔을 X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튼의 발은... '다른 공'을 차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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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휘슬 후 두 선수가 충돌합니다.

[헤프닝에 대한 각 감독들의 반응]

빅 샘 : 오늘 경기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바튼의 평판 때문에 바튼만 의심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았고 하면 안 되는 태클이었습니다.


로이킨 : 저는 좀 높았던 태클 하나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을 겁니다. 높은 태클들은 경기 도중 일어나는 법이고 대부분은 타이밍을 잘못 쟀을 뿐이죠. 결국 주고 받는 겁니다. 딕슨은 강한 녀석이고 라커룸에서 멀쩡했습니다. 실려나가거나 하지 않아요.


빅샘이 바튼을 지키는 말을 한거야 당연하지만 로이킨이 저렇게 말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네요. 대략 '까짓거 안 다쳐'라는 정도의 말이니... 자신이 은퇴 전 워낙 날렸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어쨋거나 심판이 별 행동을 하지 않았으므로 FA 징계위원회에서 바튼의 태클을 소급하여 징계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거친 태클이기는 했지만 비두카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워낙 거친 더비 매치였으니 바튼만 따로 찍어서 벌하는것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빅샘의 말대로 '바튼'이었기 때문에 더 부각되는건 아닌지... 잘 끝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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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팬들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제레미. 그러나 과연 그의 잘못 뿐일까?]


5승 2무 3패로 8위를 기록하며 10년 만에 최고의 스타트를 밟은 뉴캐슬 유나이티드. 하지만 요즘 팬들의 불만은 예전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2007~2008 시즌의 주장이 된 제레미가 있습니다. 경기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 하는 플레이와 팬들이 이레 주장에게 요구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는 제레미.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레미의 잘못인지 저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경기에 제레미의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로 나올시 엠레처럼 날카로운 패스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은조그비아처럼 과감한 돌파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버트처럼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는 홀딩능력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큰 실수로 팀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아니죠. 그저 무난한 플레이를 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윙으로 쓰기에는 급성장한 밀너와 은조그비아가 아쉽죠. 무난하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못 해주는 제레미. 그러나 스카이 스포츠 평점은 6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시즌 평균 평점도 6.2이죠. 물론 요즘 변별력이 떨어져 가는 스카이 스포츠이지만 다르게 보면 제레미의 움직임은 공이 없는 곳에서 빛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공 위주로 화면이 잡히는 TV 중계로는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현재 제레미의 모습은 과거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붐송이나 암디 파예처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비난대상이 된 이유는 '캡틴'이기 때문이겠죠.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하는 캡틴. 시어러를 보아온 툰아미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겠지요. 그러나 빅샘이 제레미를 캡틴으로 뽑은 것은 뛰어난 활약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제레미의 다양한 언어구사 능력과 '만델라'라는 별명이 있을만큼 친화력이 강하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외교관이 주장이라니!'라는 불만이 크지만, 그것이야말로 뉴캐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리빌딩을 위해 다국적 선수들을 영입한 빅샘으로서는 제레미의 외교 능력이 정말 반가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선택이 나름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클럽에서 사온 선수들이 첫 시즌부터 괜찮은 호흡을 보이며 시즌 8위를 기록하고 있는건 제레미의 외교능력이 선수들을 모아준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네요. 실제로 제레미는 시즌 초반에 뉴캐슬을 떠나려던 은조그비아에게 충고하여 잔류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팬들 중에는 경기력이 별로인 제레미를 벤치로 돌리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입니다. 캡틴이 부상인 것도 아닌데 벤치에 앉아 있으면 캡틴의 위상도 떨어질 것이고 겨우 짜맞춘 선수단도 흔들리겠죠. 오히려 이렇게 불만이 계속 나올때야말로 빅샘은 제레미를 꾸준히 기용하여 캡틴의 위상을 세워줘야 합니다. 제레미도 불만을 잠식하기 위해 캡틴다운 활약을 보여주려고 하는 듯 하네요. 프리킥을 자꾸 제레미가 차는 것도 자신의 강점인 세트피스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 같은데 오히려 이런 부담감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글이 두서없이 계속 되어 좀 길어졌지만 요점은 새로 이적해 온 다국적 선수들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제레미야말로 이번 시즌 캡틴의 적임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제레미가 더 활약해 준다면 좋겠지만 캡틴은 경기 내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외적인 모습도 중요한 거지요.

Posted by 제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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