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1927 시즌. 바로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마지막으로 1부리그 우승을 하였던 시즌입니다. 이는 영국 프로축구가 프리미어리그로 재편되기 훨씬 전 이야기이며 당시의 1부리그는 뜻 그대로 English 1st Division이라고 불렸습니다. 최근 주춤하고 있지만 팀 역사를 보면 1934~48, 1961~65, 1978~84, 1989~93 등의 2부리그 강등을 겪고도 다시 줄곧 올라왔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입니다. 우울하실 툰아미 여러분들을 위해 구단이 잠시 재도약의 시기를 갖는다고 생각하며 잠시나마 옛날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926/1927년의 우승을 이끈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스쿼드를 소개합니다.

  1926/1927 시즌의 우승을 이끌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스쿼드는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시즌 동안 총 21명의 선수가 1군 출장을 했으나 주로 베스트 11 위주로 팀이 운영되었습니다. 베스트 11 중 7명이 스코틀랜드 출신이었고 평균 연령이 29세로 노련했으며 다소 단신이 많았던 스쿼드였습니다. 2군 리저브팀에는 팀에 공백이 생길 당시 별 부작용 없이 메꿔줄 수 있는 노장 선수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당시 오프사이드 규정이 바뀌어 영국 축구구단들은 포메이션의 변화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이 변화를 첫 번째로 받아들이며 여태 꾸준히 사용해왔던 2-3-5 포메이션을 버리고 3-2-5 포메이션을 선택했습니다.

윌리엄 윌슨 (William Wilson. 26세. 에딘버그 출신. 45경기 0골)


  이전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합류한 스코틀랜드 출신 골키퍼는 데뷔경기에서 7골을 헌납했지만 우승시즌 모든 경기에 출장했습니다. 뉴캐슬의 압도적인 경기 내용 때문에 주로 한가했지만 좋은 골키퍼였으며 볼 핸들링과 위치 선정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근거리 슈팅을 막아내는데 뛰어났으며 크로스를 처리하는 데에 전 시즌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알프 메이트랜드 (Alf Maitland. 30세. 에딘버그 출신. 39경기 0골)

  1924년에 뉴캐슬에 들어온 메이트랜드는 그 이후 왼쪽수비자리에서 허즈페스의 백업으로 뛰었습니다. 백업으로써 16번 밖에 출장하지 못하며 별 자리를 못 잡았던 메이트랜드는 1926/1927 시즌 오른쪽 수비로 전향한 후 챈들러의 주전자리를 빼앗는데 성공합니다. 초반에는 오른쪽 수비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패스가 불안했지만 지능적인 태클을 보여주었고 실수를 곧장 만회하였습니다. 메이트랜드는 가끔 공을 가지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여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단점도 있었지만 메이트랜드는 빠른 수비결정을 내리는 체격이 좋은 수비수였으며 위험한 순간에 상대 선수를 막아내는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수비수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메이트랜드는 좀 더 안정적이었던 허즈페스와 함께 효과적이면서도 대조적인 수비진을 이루었습니다.


프랭크 허즈페스 (Frank Hudspeth. 36세. 퍼시레인 출신. 45경기 3골)

  뉴캐슬의 진정한 전설 중 하나인 허즈페스는 19시즌 동안 뉴캐슬에서 뛰었습니다. 이 기록은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최장기간입니다. 우승 시즌 전까지 주장이었으며 우승시즌에서도 갤러처가 출장을 못 할시 주장역할을 맡곤 했습니다.
  당시 36세의 나이 때문에 과연 허즈페스가 아직도 1부리그에서 뛸만한 체력을 갖고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Old Surefoot’은 한경기도 빠지지 않고 출장하였으며 뉴캐슬 유나이티드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허즈페스는 간간히 페널티킥을 차곤 했으며 그가 기록한 3골 중 2개는 페널티킥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로디 맥켄지 (Roddie McKenzie. 25세. 인버네스 출신. 41경기 2골)

  1922년에 팀에 합류한 맥켄지는 12시즌동안 250경기 이상을 출장하며 활약했습니다. 끈기있고 열심히 뛰는 오른쪽 하프였으며 빠르고 예리한 태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볼컨트롤의 마법사’였지만 간간히 과도한 발재간을 보이다 위기를 불러와 관중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승시즌에서 맥켄지가 보여준 훌륭한 모습은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의 시선을 끌게 됩니다.


찰리 스펜서 (Charlie Spencer. 26세. 워싱턴 출신. 38경기 0골)

  1921년 아마츄어리그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합류한 스펜서는 하프백으로 입단했었으나 오프사이드 규정의 변화로 인해 중앙하프로 전환하였습니다. 뉴캐슬은 오프사이드 규정에 맞춰 ‘3번째 백 포메이션’을 사용한 첫 팀입니다.
  스펜서는 기복없이 꾸준했으며 상대팀의 역습을 가로채고 끊는데 능한 선수였습니다. 우승 시즌 전에는 공격능력 부족으로 비판받았지만 포지션 경쟁자였던 무니를 물리치고 주전자리를 꿰찬 우승시즌에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윌리엄 깁슨 (William Gibson. 28세. 라크홀 출신. 35경기 출장 0골)

  1923년 아이르 유나이티드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깁슨은 곧바로 오른쪽 하프로써 팀에 자리를 잡아 내내 주전출장을 하였습니다. 172cm의 단신이었던 깁슨은 날카로운 태클과 가로채기를 보여주었으며 패스의 모범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클래스가 있는 선수였습니다. 우승시즌 초반부 깁슨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깁슨, 맥도날드, 세이무어의 삼각편대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전술의 핵심이었습니다.


톰 어윈 (Tom Urwin. 30세. 하스웰 출신. 42경기 5골)

  선더랜드 출신의 키 작은 이 선수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선더랜드, 미들스보로에서 전부 뛴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입니다. 1924년 미들스보로부터 뉴캐슬에 합류했던 어윈은 6년 뒤 선더랜드로 이적합니다.
  민첩하고 영리했던 어윈은 양쪽 사이드를 소화해낼 수 있었으나 주로 오른쪽에서 뛰었으며 기복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슈팅을 꺼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밥 맥케이 (Bob McKay. 26세. 글래스고 출신. 28경기 11골)

  1926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고 평가받았던 로버트 맥케이를 글래스고 레인저스에서 영입하는데 £2,750의 이적금을 사용했습니다. 맥케이가 1926년 10월말 합류했을 당시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8위에 불과했지만 맥케이는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필요했던 공격진에서의 ‘빠진 고리’의 자리를 채워내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데뷔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맥케이는 정기적으로 골을 기록했지만 맥케이의 진가는 다른데에 있었습니다. 맥케이는 섬세한 발재간으로 수비수를 쉽게 제쳤으며 동료 공격수에게 절묘한 패스를 하며 공격기회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휴이 처처 (Hughie Gallacher. 23세. 벨쉴 출신. 41경기 39골)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노련한 허즈페스 대신 이 어리고 키작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수에게 주장자리를 주자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갤러처는 우승시즌 첫 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으며 시즌 매경기당 한 골을 기록하였습니다. 시즌 내내 5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갤러처가 몇 경기를 국가대표 경기에 출장하느라 놓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골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갤러처는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우승 시즌 동안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갤러처는 약간의 틈만 있어도 어느 각도에서나 정확하고 강렬한 슈팅을 날리는 선수였습니다.
단순한 골잡이가 아니라 눈이 휘둥그레지는 발재간과 기발한 움직임으로 수비수들 사이를 드리블해 나갔으며 주위 선수들의 위치를 잘 인지해 훌륭한 패스를 선보였습니다.
  167cm의 단신이었던 갤러처를 막기 위해 상대 수비수들은 파울을 종종 사용했으며 갤러처는 그에 대한 ‘보복’을 보여주어 심판들에게 경고를 받곤 했습니다.


톰 맥도날드 (Tom McDonald. 31세. 인버네스 출신. 44경기 23골)

  공격수에 걸맞는 골기록과 함께 맥도날드는 예리한 스루패스와 좌우 벌려주는 패스를 보여주었습니다. 172cm의 키에도 불구하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공격진 중 키가 큰 편이었으며 맥도날드, 세이무어, 깁슨의 왼쪽 라인 연계는 꾸준히 갤러처에게 볼을 지급했으며 세이무어와 맥도날드도 그 활약에 걸맞는 골을 기록했습니다.


스탠 세이무어 (Stan Seymour. 33세. 켈로 출신. 41경기 39골)

  훗날 감독과 다이렉터를 역임하며 ‘Mr.뉴캐슬’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세이무어는 이 당시 은퇴를 앞둔 선수였습니다. 시즌 내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즌의 총 슈팅 중 50%에 살짝 미달하는 슈팅을 기록한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짐 파크 (Jim Park. 23세. 벨쉴 출신. 5경기 0골)

  파크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으나 스펜서의 빈 공간을 메꾸기 위해 출장할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톰 커리 (Tom Curry. 32세. 사우스 쉴즈 출신. 5경기 0골)

  윙하프였던 커리는 1912년부터 뉴캐슬에서 뛰었으나 1926/1927년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하프백들이 보여준 뛰어난 모습 때문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커리는 가끔 출장할 때마다 어느 주전 하프백에 비교해도 못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임스 보이드 (James Boyd. 19세. 글래스고 출신. 2경기 0골)

  오른쪽 라인을 담당한 보이드는 카디프와의 홈경기에서 데비경기를 치뤘으며 레체스터와의 경기에도 출장했습니다. 우승시즌의 보이드는 아직 10대였던 미완의 선수였으며 훗날 뉴캐슬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제임스 로우 (James Low. 32세. 킬버니 출신. 2경기 1골)

  어윈에게 오른쪽 주전자리에서 밀려난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우는 은퇴를 코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우승시즌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마지막 골을 기록했습니다.


에드워드 무니 (Edward Mooney. 29세. 워커 출신. 3경기 0골)

  하프백이었던 무니는 전쟁 직후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합류했으나 1925년 12월 후 계속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시즌 첫 3경기에 출장했으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스펜서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우승시즌이 끝난 후 헐시티로 이적했습니다.


알버트 챈들러 (Albert Chandler. 29세. 칼리슬 출신. 4경기 0골)

  오른쪽 백이었던 챈들러는 더비로부터 1925년에 합류한 선수입니다. 시즌 초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챈들러는 주전 경쟁에서 메이트랜드에게 밀리었으며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팔렸습니다.


존 클락 (John Clark. 23세. 뉴번 출신. 17경기 4골)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단신 공격진 사이에서183cm이었던 클락은 거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주로 백업 공격수로 운용된 클락은 열심히 뛰었으나 느렸고 볼 터치가 좋지 않아 뉴캐슬의 빠른 공격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늘 열심히 뛴 클락은 최선을 다했으며 팀이 필요로 할 때 1군으로 올라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선수였습니다.


빌리 햄슨 (Billy Hampson. 42세. 레드클리프 출신. 2경기 0골)

  '노장’ 햄슨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의 13번째 시즌이자 마지막이 되는 시즌을 보냈으며 4월동안 메이트랜드의 빈자리를 메웠습니다.


조 해리스 (Joe Harris. 30세. 글래스고 출신. 9경기 0골)

  스코틀랜드 국가대표였던 윙하프 해리스는 1군으로 불려올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였습니다.


제임스 로린 (James Loughlin. 21세. 달링턴 출신. 4경기 0골)

  과감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공격수였던 로린은 좋지 않은 볼 컨트롤과 과도한 체중으로 인해 시즌이 끝나고 웨스트햄으로 팔렸습니다.

Posted by 제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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